
함장님 글 읽다가 생각나서 적어봄...
-----------------------------------
부모님들께서는 아주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하셨다.
부부 맞벌이로 하시다 보니 어린 나를 딱히 맡겨 두실 때도 없고 해서 우리 어머니 나를 업고 출근하시고 퇴근하시길 반복 하셨다. 동생 현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자연스레 나는 책 위에서 자고 먹고 싸고(!) 놀았다. 그런 덕에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책 위에서 자는 모습, 책이랑 노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 한글도 읽지 못하면서 만화책, 그림책은 그렇게도 잘 봤단다. 학창시절에는 주말에 조금씩 부모님 일을 돕기도 했다. 일손이 바쁜 연말연시에는 책 포장에서, 대학 입학 시즌에는 원서 장사까지 많은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부모님의 ‘책방’에서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일장일단이라고 부모님들께서 책방 하시는 게 나에게 독이 된 경우도 있었다. 중 고등학생 시절에는 생일에 가장 주고 싶은 선물 받고 싶은 선물이 “책” 이었다. 하지만 ‘책방아들’ 이라는 부담스런 이름 때문에 6년 동안 책 선물을 한 번도 할 수가 없었으며, 당연히 책 선물은 기대 할 수도 없었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 하면서부터 친구들에게 책 선물도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종종 선물을 받는 경우도 생겼다. 고향집에서 부모님들이 ‘책방’을 하신다는 걸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 나만의 도서관을 두고 있다가 학교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부터는 책을 마음 놓고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힘이 들었다. 새로 월간지가 나올 때 마다 대형 서점에 들러서 봐야 했으며, 간혹 작은 서점에서는 점원들의 눈치에 다 보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때 부터 우리 부모님의 책방이 나에게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가끔 고향집에 다니러 가거나, 군대 휴가를 나오면 집으로 바로가지 않고 서점에 들러서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는 읽고 싶었던 책들(멋있어 보이지만 대부분 컴퓨터 잡지랑, 관련 서적들이다.)을 잔뜩 가방에 집어넣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부모님들 서점을 정리하신 지 몇 년 되었다. 책방들이 즐비해 있던 대구 중앙로에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라는 거대 서점이 들어오면서 우리처럼 작은 책방은 단골을 제외하고는 손님들이 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인터넷 서점이 들어서면서 우리 책방도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갔다. 결국 아버지는 서점을 정리하시고 지금은 다른일을 찾으셨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책은 꼭 서점에... 책방에 가서 직접 보고 사려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저렴하게 책을 구할 수 있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가 팔아준 한 권의 책이 우리 동네 작은 서점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을 때에는 그게 행복인지 알 길이 없었다. 책에서 자고 책에서 놀고... 지금 돌아보면 그 때만큼 내 인생에 값진 보물들이 주어진 적이 없었는데, 그 때 더 많은 책을 읽어 보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조금 후회가 된다.
꿈꾸는 동안은 그게 꿈인걸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그것이 행복인 것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
요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주변에 있는 서점(건대글방)에 들른다. 하지만 책을 살때마다 내 지갑은 심하게 떨리는 걸 느낀다.
그래도 책을 살때마다 난 우리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우리 서점의 Motto를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의 생활 철학이 그대로 카피에 담겨 있다.
"과소비가 미덕인 것은 책! 뿐입니다."
'1_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paperon.net 로그를 보다가... (4) | 2005.02.01 |
---|---|
福(복), 행운 (5) | 2005.01.31 |
1월 독서모임 (3) | 2005.01.28 |
행복을 행복인지도 알지 못한 채… (7) | 2005.01.26 |
Daum RSS넷 서비스에 관련해서... (0) | 2005.01.21 |
2005년 비즈니스 트렌드 대전망 컨퍼런스 참가. (2) | 2005.01.20 |
책과 펜을 다시 들며... (0) | 2005.01.11 |
2005년 신년 계획 세우기.. (1) | 2005.01.10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잠깐동안 같은 동네 서점을 이용하셨군요 --)a ㅋㅋㅋㅋ
아~부러워요. 집이 책방 이었다니.. 저 역시 책 선물 받는거 주는거 참 좋아해요. 그런데 -_-a 책 선물 해주는 이가 없어요 orz. 그나마 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하나라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서로 구입한 책 바꿔보기로 했으니까요. 가끔 그 친구에겐 선물도 하니까요.
저희 집도 아버님께서 책을 무지 좋아라 하신 덕분에 책이 굉장히(?) 많았답니다. 그 덕분인지 친구네 집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집안에 책이 별로 없을 경우 무척이나 낯설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웬지 안정이 안된다랄까요.^^;;
"과소비가 미덕인 것은 책! 뿐입니다." 아주 맘에 들어요.
그런데.. 소유욕과 현실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괴리감은 정말이지...orz.
부러운 사람들 중 한명이.... 서점을 하시는 부모님이 있는 사람이였는데... "꿈꾸는 동안은 그게 꿈인걸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그것이 행복인 것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 저 같은 경우에도 보고 싶은 책을 사서 집에 소장하면서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이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의 조금 엽기적 행각이라 하면 책이 숙지가 된 경우... 이 정도는 보관해야한다라는 생각들지 않는 이상... 폐지로 팔아벌이는;;;; 아무래도 책은 내용이 중요하니까요..
책을 잘못 과소비하면 reader가 아닌 collecter의 길로 빠질 수도^^;;;
오옷..건대글방..주로 밤새워 술마시는 날의 약속장소..;;
저도 오늘 강남 시티문고에서 N.P. 다읽고 왔습니다..
시간에 쫗기어 속독을 해서인지 대강 내용은 생각이 나는데..
등장인물은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허허..
잡지인줄알았어요.편집실력도 좋으시네요.^^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안녕하세요.트랙백타고 왔습니다 ^-^
아, 아침부터 따뜻한 날입니다. 따뜻한 글을 읽고나니, 마음도 더욱 따뜻해집니다. 대구에 어느 서점이셨는지요? 대구에 작은 지역서점이 참 많았지요. 지금은 대구서점 하나밖에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다들 사라지고 있군요. 춘부장께서 지으신 모토 너무 멋집니다..
맞트랙백 합니다~.